일본

아스카(飛鳥)

마블비치 2005. 5. 28. 00:46

아스카(飛鳥)는 일명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곳곳에 유적이 산재해 있다.

 

아스카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자전거를 빌려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도보로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일본에서는 아스카에 도읍하던 6세기 말에서 8세기 초의 100여 년의 시기를 '아스카 시대' 라 한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에 의해 불교문화가 융성하고 새로운 문화가 꽃피운 시기로,

일본 고대국가 체제가 확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석무대고분

봉토가 완전히 없어지고 석실만 남은 고분

 

피장자는 불명이지만,  6세기 후반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 백제계 인물이라는 설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오카테라(岡寺)

토불(土佛)인 본존불로 유명한곳

 

 

 

 

 

주반석(酒般石)

술을 교환하였던 곳이었다는 상상에서 주반석으로 불리고 있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아스카에는 이처럼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석조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구형(龜形) 석조유적, 주반석 바로 옆에 위치

 

 

 

 

 

606년(588년)에 창건된 일본 최고(最古)의 사찰

현재는 절터만이 남아 있고, 사진에 보이는 본당은 현대에 지은 건물이다.


일본에서의 불교는 백제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보내면서 공인되기 시작하였다.

아스카의 건립에도 백제에서 파견된 혜총을 비롯한 다수의 백제인과 고구려인들이 참여하였고, 절의 가람배치는 평양에 위치한 고구려의 청암리사지(1탑 3금당식)와 동일하다.

 

아스카대불은 고구려가 구리와 황금을 보내줘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화재로 손상돼 두부(頭部)만이 아스카시대의 것이다. 

 

 

 

 

 

가와라사(川原寺)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금당의 초석은 성덕태자가 백제에서 수입한 마노석(瑪瑙石)이라고 전해진다.

 

 

 

 

다치바나사(橘寺) 경내에 있는 이면석

각각 인심의 선악을 상징하고 있다.

 

 

 

 

 

일명 '귀신의 도마(鬼の俎)'와 '귀신의 화장실(鬼の雲隱)'로 불리는 유적.

무덤 안에 쓰일 석실을 만들려다 미완성인 채 놓여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길비희메왕묘(吉備姬王墓)에 있는 ‘원숭이돌’

18세기 초 묘 근처의 논에서 파낸 것인데, 제작연대나 목적은 불명이다.

한국에서 건너온 석공의 작으로 추정되고 있다.